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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5 가을의 기억 (3)
  2. 2010/03/06 오미야콘 마을 (3)
  3. 2008/10/03 괴상한 이야기(부제:박미영군 생일) (7)
  4. 2008/03/27 명의 (14)
  5. 2008/02/06 "고통의 의미" (11)
  6. 2007/11/21 전철안에서.. (7)
  7. 2007/11/20 첫눈 (20)
  8. 2007/11/05 해피엔딩 (11)
  9. 2007/10/29 심심풀이 (8)
  10. 2007/09/05 교통사고조심합시다. (3)

가을의 기억

Posted by 집행부 이야기 : 2010/10/25 23:23

어릴 적에 집의 창문이 유리가 아니고 하우스비닐로 되어 있었는데 그땐 몰랐다.
초등학교 들어갈 즈음의 가을에 집 창문을 유리로 바꾸고 엄마가 더 이상 춥지 않겠다고 좋아했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더 어릴 적 기억은 가물가물해서 집안이 추웠던 기억은 거의 없다.
그 해 겨울, 당시 MBC의 기상캐스터 아저씨가 김동완 아나운서였는데 영하 21도를 가리키면서 동파와 추위에 주의하라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물론 기상예보 오프닝 음악도.

 

 결국 난 그해에 귀와 볼과 손등에 동상이 걸려서 고생 좀 했다. 지금도 가끔 추운가을이나 겨울이 되면 가려워서 긁게 된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나, 엄마랑 누나와 같이 농협에 갔었다.
그때도 연쇄점이 지금처럼 대체로 가격이 저렴해서 거기만 갔었다.
그 즈음에 블랙로즈라는 초콜릿이 발매되어서 텔레비전에서 선전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의 미니쉘처럼 작은 게 아니고 가로세로 7센티미터 정도의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정사각형이었다.

http://www.adic.co.kr/gate/video/show.hjsp?id=I77279

 

사탕은 싫어해도 초콜릿을 좋아했던 난 연쇄점에서 그 것을 보자, 먹고 싶은 충동이 너무 들었다. 그러나 500원은 너무 비쌌다. 그 때 당시 자장면의 가격은 700원, 시내버스 차표의 가격은 정몽준이가 말하던 70원 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장을 볼 때 보통 3000원, 많이 살 때는 5000원을 썼다. 하지만 어린 나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초콜릿 주위를 맴돌다가 점원들이 안보는 틈을 타 잠바 주머니에 초콜릿을 집어넣었다.
물론 이건 키가 작은 내가 벽모서리 천장마다 붙어 있는 수많은 거울들을 보지 못해서 생긴 부처님 손바닥 안 범죄였다.

 

엄마가 계산하고 있을 때 먼저 나가려고 하던 나는, 초콜릿 주변을 기웃거리던 땟국물 가득한 아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여자점원에게 붙잡혀 죄를 추궁 받았고, 이를 발견한 엄마는 살려고 했던 거라며 점원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에게 먼저 나가라고 했고 나중에 누나와 엄마가 나왔을 때 엄마 손에는 그 초콜릿만 들려있었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엄마랑 누나랑 초콜릿을 쪼개 먹던 게 기억난다. 그 후로 엄마는 그 연쇄점에 다신 가지 않으셨다.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가 열리면 어디서인가 노점상들이 나타나서 여러 가지 장난감등을 포함해 신기한 물건들을 가져와서 팔곤 했었다. 흔히들 '달고나'로 부르는 설탕으로 만든 ‘띠기’도 하고 싶었고

 

장난감들 특히 무선조종이 되는 자동차가 갖고 싶었지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보자마자 단념하고 화약총에 빨간색 링형 화약을 끼워서 하늘에 쏜 것이 전부였다.
그 화약이름이 홍능8연발 화약 이었던가 그랬다. 

 

 저녁 즈음이 되면 화약도 다 떨어져서 남들이 쓰다 불발나 버린 화약을 주우러 운동장을 다녔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그때는 아이들 운동회 부상으로 공책을 줬었다. 달리기 1등은 세 권, 2등은 두 권, 3등은 한 권, 이런 식으로. 저학년 때는 체구가 커서 달리기를 하면 상위권이었는데 고학년이 될수록 달리기가 션찮아졌다.
그래도 학교에서는 운동회 폐회식 때 전교생에게 3권 정도는 기본으로 줘서 예닐곱 권 정도는 집으로 가져가 다음 학년이 돼서 쓰곤 했다.

 

지금도 초등학교 시절에 쓴 일기장을 보면 운동회 때 받은 것을 구분할 수 있다. 또 다행이도 수원에 사는 작은 고모랑 삼촌이 두 분 모두 문구, 완구점을 해서 초등학교시절에는 학용품이 아쉽지 않았다.
재만이 아버지께서 재만이를 높이 들면서 “우리 재만이는 열 네 권이구나!”라고 소리치시던 게 갑자기 생각난다. 우린 그 때 다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었다. 재만이는 초등학교 때 모든 운동을 다 잘하던 친구다.

   초등학교 때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은 팥빵과 한 마리를 넓게 펴서 비닐에 진공 포장한 양념훈제 오징어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흔히 맥주안주로 먹는 제품이다. 4학년 운동회에 외할머니가 운동회에 오셔서 사주셨는데 너무 좋았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 교문리 돌다리에 사셨는데 방학이 되면 꼭 놀러갔었다.
시골에 살다가 도시에 가면 제일 신나는 것은 노점과 포장마차였다.

 

교문리 돌다리는 버스 정거장이기도 했다. 도로 옆과 건물사이의 인도는 2미터도 안되지만 노점상들이 쭉 줄지어 있었고 난 꼭 젓가락에 햄만 꽂아 만든 핫도그를 사먹었다. 그 핫도그는 실제로는 좀 뻑뻑하고 줄줄이 비엔나 보다는 맛이 없었지만 항상 맛있게 보였다. 그리고 우리학교 앞에서는 한 번도 파는 것을 본 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맛있게 보여서 아마 더 사먹은 것 같다. 물론 돈은 외할머니가 주신 것이었다.

그때는 할머니에게 놀러가는 것이 너무 좋았고 훈제오징어를 사주셨을 때는 충성을 다할 거라 다짐했는데 지금 이렇게 나이를 먹으니 오라고 해도 잘 안 가게 된다.

사람 참...

참고로 난 할머니의 눈을 많이 닮았다. 친척들 특히 큰외삼촌(할머니를 가장 닮았다)은 우스갯소리로 할머니의 눈이 3대를 망쳤다고 한다. 물론 난 못생겨서 이런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지만 얼마 전에 관상을 보는 스님이 눈에 매력이 있으니 눈을 소중히 하란다.
얼굴에서 눈이 구십이라 눈을 소중히 하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친가로부터 받은 홍염살과 외할머니에게 받은 눈이 내 얼굴의 유일한 매력이라니 더욱 소중히 해야지 싶다.

난 어릴 때부터 식탐도 식욕도 강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다행이다. 태어나서 밥맛이 없었던 날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친척 집에 가면 꼭 냉장고를 열어서 이것저것 신기한 것을 구경하다 먹고 했는데 한 번은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음료수 페트병이 있어서 뚜껑을 열고 두 모금 벌컥벌컥 마시고야 그것이 들기름인 것을 알았다. 반나절동안 니글거려서 입덧을 해대니 외숙모가 냉커피를 타줘서 좀 괜찮아 졌었다.

 

방학이 되면 보통 보름을 넘게 친척집에서 보냈다.

  운동회가 끝나면 보통 다음날이 추석이었다. 추석이면 집에서는 송편을 만들어서 가마솥에 찌고는 했는데 밑에다가 소쿠리를 받치고 그 위에 솔잎이 무성한 소나무잔가지로 빽빽이 채운다음 송편을 얹었다. 조선솔인지 외솔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마 조선솔로 했던 것 같다. 다되면 송편에 붙은 솔잎들을 떼느라 분주하다.

 

그맘때면 밤이랑 도토리도 한창이다. 아침이면 청솔모나 다람쥐가 주워가기 전에 밤새 떨어진 밤을 주우러 갔다. 밤을 줍다가 밤송이가 머리에라도 떨어지는 날에는 헬게이트가 열리는 날이었다. 한 번 지옥문을 열은 후로는 창이 큰 밀짚모자를 쓰고 갔다.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으려면 나쁜 결정을 경험해야 한다는 어떤 리더의 조언이 새삼 생각난다.

 

도토리는 어린 나에게는 밤처럼 맛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도토리묵은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가 굵은 가시나무로 대가리를 만든 곰배로 참나무를 치면 도토리가 후두두둑 떨어지는데 도토리는 맞아도 안 아파서 스릴이 좀 없다.

 

우리는 산에 살았는데 거기는 가문 종종산이었다. 그래서 친할아버지 묘가 집 바로 위에 있었고 추석이 되면 친척들이 성묘를 왔다가 우리가 주운 도토리를 가져가곤 했다. 호박이랑 도토리는 산과 들에 지천이라 아무리 많이 가져가도 아깝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얼굴을 찌푸리겠지만 시골에 살 때 벌레를 참 많이 먹었다. 물론 맛은 그저 그렇지만 단백질 대용으로 먹었었다. 보통 벌초하다보면 장수말벌이나 일반 벌집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는데 집단으로 다 태워 죽인 후 애벌레를 요지로 꺼내어 후라이팬에 볶아 먹거나 아니면 말벌통을 통째로 항아리에 술과 함께 담그면 약주가 된다. 근데 아버지는 목회를 하실 때라 술을 안 드시니 술은 필요가 없었고 애벌레는 다 내차지였다.  

메뚜기 볶아 먹는 것은 다반사였다.

 

이건 좀 생소할 지도 모르겠다. 밤을 주우면 그중에 구멍이 난 밤이 있는데 그런 밤들은 따로 골라서 한 쪽에 모아 1주일 정도 두었다가, 냄비에 찌면 애벌레가 커져서 그 안에 그대로 있다. 그럼 좋다고 티스푼으로 퍼먹었다.

 

그만큼, 어릴 땐 집이 가난해서 고기가 없었다. 콩, 여름에 저수지와 천에서 잡은 붕어, 잉어, 피라미, 새우, 가제 그리고 옆동네에 양계장에서 사온 계란이 전부였다. 그러고 보면 계란 값은 참 안 오른다.

 

그 때 엄마가 계란 한 판 사오라고 하면 2천 원 들고 가서 한 판을 사왔는데 지금은 한 판에 5100원 이니 20년 동안 두 배 반 올랐다. 버스고 자장면이고 다 열배가 올랐는데... 파업할 줄 모르는 계란이 최고다.

 

 이후에는 가을소풍이 있겠는데 가을소풍은 돈이 없어서 몇 번 안갔다. 한 번은 엄마가 아파서 아버지가 김밥을 대신 싸주셨는데 자르면 터질 것 같아서 내가 그냥 가져갔다. 점심이 되어 아이들이 제각기 김밥을 내놓았는데 다들 이쁘고 먹음직스럽게 잘 싸왔더라. 그리고 계살 튀김에 돈까스 같은 것도 싸와서 담임선생님을 드리는데 차마 내 도시락 열 용기가 나지 않아서 아무도 없는 구석에 가서 열었었다. 김밥이 꼭 갓 태어난 검정색 강아지나 두더지 같았다.

 

남들이 볼까 얼른 먹고 점심시간 내내 숲 속에서 그냥 앉아 있었다. 6학년 때는 가을소풍이 없고 수학여행이 있었던 것 같다. 수학여행은 괜찮았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면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왔다.

 

아마 나와 동갑이라도 도시에 살았거나 집이 좀 살았다면, 이 이야기가 공감이 안되는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적어 논다. 잊어버리기 전에. 그리고 이 글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읽을 거라 생각하고...공감되지 않는 사람은 읽지 않을터이니.

오늘 갑자기 이렇게 지나간 일들을 적는 것은 아마도 내가 가을을 타는가 싶다.

오미야콘 마을

Posted by 집행부 사회 : 2010/03/06 21:35

~장용은

괴상한 이야기(부제:박미영군 생일)

Posted by 영문과 이야기 : 2008/10/03 01:47

어제는 일명 영문과의 "이쁜이"이자 부루마불가족의 막내남동생(?)인 박미영군의 생일 이었습니다.
박미영군의 생일은 7일장으로 하니 그안에 만나시면 정성어린 생일빵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이상한 가족에 관한 쓰잘데기없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관대마을에 어린이용 부루마블게임 때문에 가족이 된 한심한 사람들이 살았답니다.
가족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덩치좋은 4형제로 총 6명 이었습니다. 

~장용은

명의

Posted by 영문과 이야기 : 2008/03/27 23:52
중국의 역사속에 가장 뛰어난 의사 2명을 뽑으라면 편작과 화타가 나옵니다.
그중에 편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편작은 삼형제중 막내로 형들 모두 의사였습니다.
하루는 위나라 왕이 편작을 불러물었습니다. "너희 삼형제 가운데 누가 실력이 제일 좋은고?"
그랬더니 편작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맏형 의술이 가장 뛰어납니다. 그리고 두 번째 형님이 그 다음이고, 제 실력이 가장 못하옵니다." 그랬더니 위나라 왕이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그래? 이상하구나! 내가 듣기로는 천하의 명의가 바로 너 편작이라던데 그럼 소문이 잘못된 것이란 말이냐?" 그 말을 듣은 편작이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맏형은 환자들이 병의 증상을 느끼기도 전에 얼굴을 보고 앞으로 병이 나을 것을 압니다. 그래서 병이 생기기 전에 미리 치료를 해주지요. 그래서 아무리 잘해줘도 형이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준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마움도 모르고 그냥 가버리지요."
"그렇겠구나. 그럼 둘째 형은?"
"둘째 형은 첫째 형보다 실력이 못한데 병이 미약할 때 그때 병을 알아차리고 치료해줍니다. 그러다 보니까 환자들은 둘째 형이 큰 병을 치료해주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겠구나. 그럼 넌 어떠냐?"
"저는 실력이 없어서 병이 다 커져가지고 아파서 죽겠다고 그럴 때 비로소 알아챕니다. 그래서 너무 중병이기 때문에 맥도 짚어야 되고, 처방하고 또 아픈 곳을 도려내기 위해서 수술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그런 미천한 저를 보고 큰 병을 치료해줬다고 고마워합니다. 저를 믿고, 존경하고, '명의'라고 부르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삼형제 중 가장 실력이 모자란 제가 명의로 소문난 이유입니다.."
편작의 말에 위나라 왕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겸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병은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합니다.
제가 요 몇일 감기때문에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난 괜찮을거야 하지 마시고
미리미리 환절기 감기 조심하실길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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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은

"고통의 의미"

Posted by 김옥엽 이야기 : 2008/02/06 17:53


새해 선물로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정규한 지음)라는 책을 받아 읽는 중인데, 함께 읽고 싶은 대목이 있어 소개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고통은 거부할 수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화시키느냐에 따라서 영적으로 퇴보하거나  성숙해집니다."는 말과 함께 지은이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그 중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첫번 째는 가난한 농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농부는 너무 가난해서 하루는 세상을 관장하는 하느님을 찾아갔습니다. 농부는 하느님께 청했습니다. "부탁이 있습니다. 당신이 정녕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딱 1년만 일기가 고르게 해주십시오. 딱 1년만 항상 알맞은 비가 내리고 기온이 알맞게 된다면, 내 곡간은 곡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겨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농부의 이 간절한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늘 고른 날씨와 알맞은 비 덕분에 곡식은 무럭무럭 자라 이윽고 수확철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가을걷이를 해본 농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곡식의 낱알은 죄다 껍질 뿐 알맹이가 영글어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농부는 다시 하느님을 찾아가 항의했습니다. "이게 어찌된 겁니까? 왜 이런 좋은 조건 속에서도 곡식은 이렇게 쭉정이뿐입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고난과 갈등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둥과 바람, 가뭄과 홍수 끝에, 고심참담하여 거두어들인 것만 알맹이가 있는 법이니라."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

전철안에서..

Posted by 편집부 이야기 : 2007/11/21 22:26
(출처: 네이버 카페 Life is Good)


언제부턴가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속을 봐야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말처럼 쉽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도 처음 똑같은 생각을 하시지 않으셨나요?

~윤우영

첫눈

Posted by 영문과 강릉 : 2007/11/20 16:33

우리 모두 첫눈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아요~~~ㅋㅋㅋ

~장용은

해피엔딩

Posted by 영문과 영어영문학과/학교생활 : 2007/11/05 21:29
~장용은

심심풀이

Posted by 영문과 언어 : 2007/10/29 22:08

한때 이야깃거리 였었는데요.
심심해서 그냥 올려봤습니다.

~장용은
태그 : 이야기, 장용은

교통사고조심합시다.

Posted by 비회원 사회 : 2007/09/05 18:09

교통사고 10대 중과실이란?


교통사고에 있어서 특히 10대 중과실 사고는 처벌이 엄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10대 중과실 사고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보험 가입여부와 관계없이 형사처벌되는 사고로 뺑소니 사고나 사망사고 및 10대 중과실 사고를 일으켰을 때에는 보험으로 보상하는 것과는 별도로 피해자와 형사합의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1) 신호 또는 지시위반사고

교통정리를 위한 경찰관(전투경찰,의무경찰,모범운전자,헌병 포함)의 신호나 지시를 위반하고 운전한 경우와 신호기의 신호를 따르지 않고 위반했을 때를 말함.
비보호 좌회전 표시가 있는 곳에서 다른 차량의 진로를 방해하여 사고가 발생하면 신호위반의 책임을 면치 못하게 됨.

(2) 중앙선침범사고

중앙선침범, 고속도로상 횡단, 회전, 후진위반 자동차가 중앙선을 완전히 넘어 반대차선으로 들어가는 경우뿐 아니라, 차체의 일부가 중앙선을 살짝만 물고 넘어가도 중앙선 침범이 됨.
차에 추돌 당해 중앙선을 침범하거나 눈길 또는 빙판에 미끄러져 중앙선을 침범한 경우와 같이 불가항력적이거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중앙선침범사고로 보지 않음.
APT단지, 주택가,도로 등에 주민들이 설치한 사설중안선은 도로교통법상의
중앙선 이라 볼 수 없음.

(3) 20km/h 이상의 규정속도 위반사고

제한속도를 시속 20Km 이상 초과하여 운전하다가 사고가 난 경우를 말 함.

(4) 앞지르기 방법 및 금지 위반사고

왼쪽에 다른 차가 앞차와 나란히 진행하고 있거나 ,앞차가 다른 차를 앞지르고 있을 때, 또는 교차로, 도로의 경사진 곳, 터널 안 등에서 앞지르기를 하다 발생한 사고를 말함.

(5) 건널목 통과방법 위반사고

철길 건널목을 통과하고자 하 때에는 모든 차는 그 건널목 앞에서 일단 정지하고 안전함을 확인한 다음 통과하여야 함.(도로교통법21조)

(6) 횡단보도상의 보행자 보호 의무 위반사고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의 삭는 신호위반으로,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의 사고는 보행자 보호의무위반으로 처리함.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건너다 사고를 당한 피해자는 횡단보도 보행인으로 보호를 받지 못함.

(7) 무면허 운전사고

면허를 받지 않은 자가 운전하는 경우나, 면허의 취소 또는 정지기간중의 운전, 해당면허로 운전할 수 없는 차를 운전한 경우 등을 말함.
무면허 운전으로 사고가 발생하여 형사책임은 물론, 자동차보험에 가입해도 면책 처리되어 보험금을 받을 수 없게 됨(대인배상1은 지급가능)

(8) 주취운전 약물복용 운전사고

인체에 혈액 1ml에 한하여 0.5ml이상 도는 호흡 1l에 대하여 0.25mg이상 알콜이 검출되거나 음주측정기로 측정한 경우, 호흡중에 알콜농도가 0.05%/BAL 이상이면 음주운전에 해당됨.
벌점초과 등으로 면허증을 경찰서에 반납하였으나 취소 또는 정지처분을 받기전에 사고를 야기한 경우에는 무면허운전으로 보지 않음.

(9) 보도 침범사고

보도가 설치된 도로의 보도를 침범하거나 보도횡단방법에 위반하여 운전한 경우(도로교통법 제12조 1.2항)

(10) 승객의 추락방지 의무 위반사고(개문발차 등)

승객의 추락방지의무를 위반하여(문을 연 상태에서 차를 세우거나 출발한 경우를 말 함.) 운전한 경우(도로교통법 제48조 제5호)

출처 네이버

제가 얼마전 학교를 통학하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그로인하여 4일정도 입원하고 학교수업을 듣기위해 약간의(?)합의금을 받고 퇴원했습니다.저는 피해자였고 상대방이 가해자로 판정됬는데 10대 중과실을 위반해서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하더라구요.여러분중에도 운전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텐데 일반적으로 대충은 알고있지만 상세히 10가지는 모르실거같아서 글을 올립니다.물론 저도 글올리면서 알게 됬습니다..^^
항상 운전 조심 하시고 특히 10대 중과실은 위반하지마세요..물론 돈이 중요한건아니지만.. 가해자가 전액 보상해줘야된답니다.

~by 김윤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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