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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공지능'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6/17 영화 속 시 읽기 5 : <A.I.>와 "몰래 데려간 아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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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A.I. Artificial Intelligence(2001)>는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1928-99)이 1983년 부터 15년간에 걸쳐 구상하고, 그가 죽은 후에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1946- )가 완성하게된 제작 과정부터 주목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1979년 큐브릭은 영국의 유명한 SF작가 브라이언 앨디스(Brian Aldiss)의 <<슈퍼토이 수명은 여름내내 간다(Super Toys Last All Summer Long>>의 판권을 사들인 후 계속 구상을 하였지만 제작을 미루어, 결국 스필버그가 완성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필버그는 미래의 기계문명에 대해 냉소하기 보다는 그 특유의 휴머니즘을 보여주지요. 그래서 인간과 인조 인간 사이의 진정한 사랑이라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낭만주의'를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미래에는 온실효과로 빙산이 녹아 해안 도시들(암스테르담, 베니스, 뉴욕....언급은 없지만 어쩌면 강릉)이 영원히 물에 잠기고,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 첨단 과학 기술을 이용해서 "먹지않고, 자원도 소비하지 않는 로봇"을 만들어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사용합니다.

서두에서 주제라 할만한 문제가 던져집니다. 회의에서 하비박사가 '진화신경망'을 갖춘 "순수한 마음으로 부모를 사랑하는 아동로봇"을 만들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 한 참석자가 '윤리적 문제'를 제기합니다.

메카(Mechas: 유기체가 아닌 기계인간들)에 대해 적대심이 많은 상황에서, 사랑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느냐는 문제가 아니죠. 인간이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가가 더 큰 문제 아닌가요? 로봇이 순수하게 인간을 사랑한다면, 그 보답으로 그 사람은 어떤 책임을 지나요?

이를 '근원적인 물음'이라고 응수하면서 하비박사는 이렇게 대꾸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랑받으려고 아담을 창조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원시적인 방식으로 '인간'을 창조하려던 "프랑켄슈타인"에서 오늘날 첨단과학을 이용한 '창조' 욕망은 '창조주'에 이르려는 욕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창조된 로봇 데이빗은 5년이나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극저온 보관'해온 회사 직원 부부에게 맡겨지게 되고, 창조 방식 대로 데이빗은 엄마 모니카를 '영원히'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친아들 마틴이 기적적으로 소생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메카'인 데이빗이 인간 가족에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데이빗을 숲에 버립니다. 데이빗 옆에는 슈퍼토이인 테디만 남죠.

이후 영화는 데이빗이 엄마 모니카가 아들에게 읽어준 동화 <<피노키오>>에서 '나무인형' 피노키오를 인간으로 만들어준 '푸른 요정'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자신이 '인간'이 되면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나에 매달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데이빗은 세상의 끝, 죽음의 바다에 떠있는 도시, 맨해튼, 자신이 만들어진 고향에 도달하고 '창조주' 하비 박사를 만나게 됩니다. 거기까지 오도록 유인한 하비박사는 자신의 창조물이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동화를 믿고 사랑의 힘으로 희망을 품으며 여행을 떠나는" 성과를 보여준 것에 감탄합니다. 데이빗의 곤경을 다 지켜보면서도 찾지 않은 것은 로봇에게 "자발적 이성과 논리적 결론이 어디서 생기나 보기" 위해서 였다고 말합니다. 하비박사의 말에 따르면 데이빗은 메카들이 가질 수 없던, 인간의 약점인 희망과 인간의 장점이기도 한 꿈을 지닌 성공작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수많은 복제물이 제작되는 실험실 현장을 목격하고 자신이 전혀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고 절망한 데이빗은 죽음의 바다로 뛰어들고 그곳에 잠긴 놀이 공원에서 피노키오의 '푸른 요정' 동상을 만납니다. 빙하기가 닥쳐와 모든것이 얼어붙는 마지막 순간까지 데이빗은 간절하게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빕니다.

그로부터 2000년 후, 빙하기가 끝나고 멸망한 지구의 새로운 주인이 데이빗을 발견하게 됩니다. 첨단 기술을 지닌 이들은 죽은 인간들의 역사를 복원하려 하고 이 과정에서  죽은 인간을 '재창조'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부활은 궁극적으로 실패하여, 신체 조직 중 일부를 바탕으로 재창조된 인간은 단 하루 밖에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데이빗은 단 하루 만의 엄마와의 사랑의 순간을 '영원'으로 여깁니다.
 
이 영화에서 두 차례 인용되는 시는 예이츠(W.B.Yeats 1865-1939)의 "몰래 데려간 아이(The Stolen Child)"입니다.  데이빗이 '푸른 요정'이 어디 사는지  물어보려고 찾아간 '만물박사(Dr.Know)' 답변 속에 처음 나옵니다. 나중에 이 답변은 하비 박사가 데이빗을 유인하기 위해 입력한 것이었음이 밝혀지고, 맨해튼 그의 실험실 문에서 다시 이 싯귀를 읽을 수 있습니다.

4연으로 구성된 짧지 않은 이 시 중 영화에 인용된 다음 구절은 연마다 후렴구처럼 반복되고, 마지막 연에서는 약간 변형되어 반복됩니다.

Come away, O human child!
To the waters and the wild
With a fairy, hand in hand.
For the world's more full of weeping than you can understand

오 인간 아이야, 떠나자!
요정과 손에 손잡고
호수와  거친 들로
세상에는 네가 알 수 없는 슬픔이 가득하니

Loreena Mckennitt: "The Stolen Child"

한마디: 여러분은 인간이어서 행복한가요?  아니면 데이빗처럼 자신이 아닌 그 무엇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나요? 프랑켄슈타인에서 <블레이드 러너>의 복제인간에 이르는 인간의 '창조물'들은 왜 그토록 인간이길 소망할까요? 인간과 비인간의 대립 속에 진정으로 인간적임이 어떤 건지 탐구하는 면도 있지만, '인간중심적 사고'의 발현이라는 점도 함축하는 건 아닐까요?

See "The Stolen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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